고려시대 금동관세음보살좌상 약탈과 귀환의 역사
1378년 왜구에 의해 약탈당한 고려시대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674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이 불상은 충남 서산 부석사로 옮겨져 2025년 1월 24일부터 일반에 공개되며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끌었다. 높이 50.5cm, 무게 38.6kg의 이 금동불상은 14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73년 일본에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부석사는 1330년경 서산 지역 사찰에 봉안하려 제작되었다는 결연문을 근거로 원래의 소유권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2025년 5월 10일, 이 불상은 일본 대마도 관음사로 반환될 예정이다. 반환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친견법회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법적 분쟁과 소유권 논란
2012년 도난 사건과 한국 반입
2012년 10월, 한국인 문화재 절도단이 일본 대마도 관음사와 가이진신사에서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포함한 불상 두 점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 이 사건은 한일 간 문화재 반환 논란을 재점화했다. 절도단의 리더 김모씨(당시 70세)를 포함한 4명은 불상을 한국으로 반입하며 부석사의 원소유권을 주장하는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일본 측은 불상이 1953년 관음사 법인 설립 이후 20년 이상 점유되었다는 점을 들어 소유권을 주장했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진 법적 공방
부석사는 2016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불상의 원소유권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2017년 대전지법 1심 재판부는 부석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소유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2023년 2월 대전고법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 관음사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왜구의 약탈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국제사법에 따라 관음사가 20년 이상 점유해 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10월 대법원은 이 결정을 확정하며 불상의 일본 반환을 최종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한일 간 외교적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부석사에서의 마지막 공개와 국민의 반응
친견법회와 국민의 애정
2025년 1월 24일부터 부석사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금동관세음보살좌상 친견법회를 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인 5월 5일, 마지막 친견법회가 진행되며 서산과 홍성 지역 주민뿐 아니라 서울, 대전, 세종 등지에서 온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약 4만 명이 불상을 보기 위해 부석사를 찾았으며, 초등학생들은 불상 그림을 그리며 추억을 남겼다. 불자들은 “꽃보다 예쁜 관세음보살님 사랑해요, 꼭 다시 만나요” “우리나라로 돌아오세요” 같은 메시지를 남기며 반환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환수 노력 청구 서명에는 1만5000여 명이 참여해 문화재 환수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여주었다.
송불의식과 일본 반환 준비
5월 10일 오전 10시, 부석사는 불상을 떠나보내는 송불의식을 1시간 동안 진행한다. 이후 불상은 대마도 관음사 측에 인계되어 일본으로 돌아간다. 지난 4월 11일,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는 부석사를 방문해 불상을 살펴보며 반환 절차를 점검했다. 이는 2012년 불상이 한국으로 반입된 지 12년 7개월 만의 반환이다. 부석사는 불상의 약탈 역사와 소유권 분쟁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며 후대에 이 문제를 알릴 계획이다.
국민의 목소리와 문화재 환수의 과제
반환에 대한 아쉬움과 환수 요구
경기 평택에서 온 50대 여신도는 “명백히 우리 문화유산인데 왜 돌려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일본의 약탈이 확실한 만큼 정부와 국민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 “약탈당한 문화재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문명사회의 가치가 실현된다”며 “후손들이 이 일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응은 불상 반환을 넘어 일본에 있는 다른 한국 문화재 환수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복제품 제작 무산과 기록의 중요성
부석사는 불상의 3D 스캔을 통해 복제품 두 점을 제작할 계획이었다. 한 점은 연구용, 다른 한 점은 금동을 입혀 봉안하려 했다. 그러나 관음사가 3D 스캔 요청을 거부하며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에 부석사는 불상의 약탈과 반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후대에 전할 방침이다. 이는 단순한 불상 반환을 넘어 한국 문화재의 역사적 맥락을 보존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한일 문화재 분쟁의 더 넓은 맥락
과거 약탈과 현재의 갈등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한일 간 문화재 분쟁의 상징적 사례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그 이전의 약탈로 인해 많은 한국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었다. 이 불상 외에도 수많은 문화재가 일본에 있으며, 환수 논의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불상 반환 결정이 국제법의 원칙을 따랐다고 보지만, 한국 내에서는 약탈의 역사적 맥락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제적 비교와 문화재 반환의 의미
세계적으로 약탈당한 문화재 반환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약탈한 유물을 원소유국에 반환하며 역사적 책임을 다하려 한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일본과의 문화재 환수 협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반환은 이러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주요 정보 요약
항목 | 내용 |
---|---|
불상 이름 | 금동관세음보살좌상 |
제작 시기 | 14세기 초반 |
약탈 시기 | 1378년, 왜구에 의해 |
도난 및 반입 | 2012년, 한국 도난단에 의해 일본에서 도난, 한국으로 반입 |
법적 분쟁 시작 | 2016년, 부석사 소송 제기 |
대법원 판결 | 2023년 10월, 일본 소유권 인정 |
공개 기간 | 2025년 1월 24일부터 5월 5일, 부석사에서 |
마지막 친견법회 | 2025년 5월 5일, 부처님 오신 날 |
반환 날짜 | 2025년 5월 10일, 송불의식 후 일본으로 |
방문자 수 | 약 4만 명, 2025년 1월 25일부터 5월 5일 동안 |
서명 참여자 수 | 환수 노력 청구 서명, 약 1만5000명 |
문화재 환수를 위한 미래의 과제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반환은 단순한 불상 한 점의 이동이 아니다. 이는 한국 문화재의 약탈 역사와 그 반환을 둘러싼 복잡한 법적, 역사적, 감정적 문제를 드러낸다. 국민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일본에 있는 다른 문화재 환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라고 있다. 부석사의 기록 노력과 국민의 서명 운동은 이러한 열망을 뒷받침한다. 앞으로 한일 간 문화재 논의는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호 존중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요 인용 자료
- Sacred Artifact Dispute Reveals Japan-Korea Tensions – OpEd
- Sacred artifact dispute reveals Japan-Korea tensions
- Why Some of Japan’s Most Exciting Cultural Figures Are of Korean Descent
- Artifact Struggles: Japan and Korea
- South Korea - Cultural Institutions
- Exotic cultural artifact
- Japan-Korea Dispute Revived by Statue’s Theft
- Mending Historical Memory: Improving People-to-People Ties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