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앞에 위치한 4성급 B호텔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작년 5월에 외국계 4성급 호텔이 문을 열기 전까지 10년 넘게 유일한 호텔로서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네 차례나 유찰되었습니다. 세종시의 초대형 랜드마크 '세종 엠브릿지'도 매각 작업이 실패했습니다. 2433억원으로 시작한 매각가격은 7차례 유찰을 거치며 1293억원까지 떨어졌습니다. 결국 매각절차 자체가 중단되었습니다.
세종시는 대한민국 최초로 대규모 도시 계획에 의해 탄생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도시의 기획과 설계 단계에서 실패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계획도시 세종은 도시 중앙의 대통령 집무실, 국회, 정부청사를 중심으로 6개의 분산된 생활권을 도로로 연결하는 환상형 도시로 기획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구 39만명이 한 데 모이는 중심상권이 생겨나지 못하고, 6개의 중소형 생활권이 흩어져 있는 구도가 되었습니다. 이는 상권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올 1분기 지역별 상가 공실률 조사에서 세종시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8%로 전국 평균 13.7%의 두 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상가 넷 중 하나는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11.3%로 전국 1위를 차지했습니다. 도심 한복판의 대형 상업시설조차 내부는 텅 비어 있어 세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부 청사 남쪽에 건설된 세종파이낸스센터는 개장 초기 교보문고와 유니클로, 하이마트 등이 입점하면서 복합쇼핑센터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간선도로 주변의 1층조차 영업을 하는 곳을 찾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는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중소기업벤처부가 입점해 있다는 사실조차 민망할 정도입니다.
'차 없는 도시'로 기획되었던 세종시는 도시 계획을 바꾸는 바람에 '차 없이는 안 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간선급행버스(BRT) 전용노선을 제외하면 도심 간선도로도 4차선에 불과하여 출퇴근 시간대면 극심한 정체가 발생합니다. 상업시설의 주차공간도 부족하여 주차 문제도 심각합니다. 세종시가 탄생한 지 2년 반 뒤인 2015년 1월까지 이 도시는 주유소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초기 입주자들은 인근 조치원읍이나 공주시로 '원정 주유'를 가야 했습니다.
'백화점과 맥도날드가 없는 도시' 세종에는 택시도 귀한 존재입니다. 인구 39만명의 도시에 택시는 400대 뿐입니다. 그나마 올해 100대를 늘린 결과입니다. 세종시보다 인구가 작은 원주시(36만명)의 택시는 1850대입니다.
세종시는 '한지붕 두가족'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 건설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맡고 세종특별자치시청은 관리 권한만 가지고 있는 구조입니다. 행복청은 출범 첫해 11만명에 불과했던 세종시 인구가 12년만에 39만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원화된 거버넌스가 세종시의 질적 성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종시는 2040년 인구가 80만명까지 늘어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6개의 생활권이 각각의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대형 상권이 발달하고 인프라도 갖춰질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인구 절벽을 앞두고 15년 만에 지역 주민이 두 배 늘어난다는 세종시의 전망은 지나치게 장밋빛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세종시는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이주해 오는 주민은 많지 않고, 대전과 청주, 공주 등 주변 도시의 인구를 빨아들이는 '충청권 인구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세종시가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있는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시 기획과 설계, 교통 인프라 등 다방면에서의 개선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