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는 중국의 도교적 색채가 스며들어 탄생한 것으로, 전쟁터나 정복지에서 전사한 군인 시체를 고국으로 옮겨다 묻어주기 위해 영환술사 혹은 영환도사들이 부적을 붙여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시체.
전쟁터에서 전사한 것만큼이나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게 타지에서 사망하는 것이다. 고전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장례만큼은 고향에서 해야 한다는 사상이 강했다. 사자성어인 수구초심이란 말도 이러한 사상에서 비롯된 것. 강시술은 영환술사들이 사망자들을 고향에 전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술법인 것이다. 일일이 돌려줘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무료봉사 중 무료봉사. 제작 알고리즘은 골렘에 가깝다.
이름의 뜻은 죽어서 굳은 시체. 여기서의 굳었다는 말은 사후강직 혹은 미라처럼 부패하지 않고 굳었다는 의미이다. 또는 얼어죽은 시체도 강시 또는 '동시(凍屍)'라고 부른다. 그 예로, 일제강점기가 끝나기 전인 1940년대까지만 해도 강시(僵屍)는 지금처럼 '중국식 '를 뜻하는 말이 아닌, '얼어죽은 변사체'을 뜻하는 말로 일상적으로 쓰였다. 국어사전에도 강시는 '얼어죽은 시체'로 되어 있다. 동시는 원령이 깃들어 사람을 해치는 얼어죽은 시체를 말한다.
실제 강시의 유래는 청나라 시절 전쟁으로 죽은 시체들을 효율적으로 운반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 왕심린이 설명한 적이 있다. 정복전쟁이 많았던 청제국 시절, 청나라 기병대의 공격으로 학살당해 죽은 적군의 시체는 계급이 높다면 그냥 땅에 묻어버리거나 계급이 낮으면 그냥 불태웠지만, 전투 중 전사한 아군의 시체가 발생할 경우엔 고국으로 옮겨서 정중히 장사를 지내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긴 대나무 2개를 시체의 양 겨드랑이 부분에 끼우고 줄로 엮어 양 끝을 두 사람이 어깨로 짊어지고 운반하는 방법'이었다. 이 모습이 멀리서 보면 팔을 들고 뛰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것이 강시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 게임 속 강시! 많은 시신을 운반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강시들이 청나라 복식에 부적을 붙이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론 실제로는 말이 안 되는 방법이라는 부정적 견해 역시 존재한다. 점점 부패해가는 시신을 무슨 수로 저렇게 운반할 수 있겠는가. 부패해가는 시신을 일으켜 세워서 겨드랑이 밑에 장대를 끼운 자세로 들어서 옮긴다면 중력으로 인해 온몸의 체중이 시신의 어깨 부위에만 집중되는 데다가 운반할 때 흔들림도 있기 때문에 어깨가 금방 허물어져 떨어져버릴 것이다. 게다가 운반하는 사람도 부패한 시신이 뿜어내는 악취와 세균을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견해이다. 만일 겨울철에 얼어서 부패하지 않은 시신만을 옮기는 방법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시신 1구가 곧 사람 1명의 무게인데, 짧은 거리가 아닌 이상 들것에 사람을 태우고 2인조로 옮기는 것도 힘들어서 4인이서 들것을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시신 여럿을 장대에 묶고 앞뒤에 사람이 걸치고 운반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홍콩 영화에서의 걸을 수 없는 상태에서 팔을 들고 콩콩 뛰는 모습은 홍콩의 장례문화와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홍콩은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매장지를 찾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 매장 문화는 남아있지만, 한국처럼 영구적인 매장이 아닌, 최대 7년까지만 무료로 매장한 뒤에 유료 갱신을 해야 할 정도이고, 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상당히 좁다. 그래서 한국처럼 눕혀서 매장하는 문화가 아니라 세워서 매장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팔을 들고 콩콩 뛰는 모습은 홍콩의 묘지에서 시신이 바로 일어났을 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홍콩에 인구가 늘어나기 이전 기록에도 이미 강시는 무릎을 굽힐 수 없어 쿵쿵 뛰어다닌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홍콩의 매장 풍습 때문에 생긴 이야기라고 보기는 무리다. 이전부터 있던 강시 설화를 홍콩 영화가 차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