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8.
946년 백두산 대분화 또는 천년분화(The Millennium Eruption)는 서기 946년 백두산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산 분화로, 백두산이 플리니식 대폭발(Plinian eruption)을 일으킨 마지막 분화이자 기원후 발생한 전 지구상의 초화산 분화 가운데 가장 강력한 분화이다. 오늘날 천지를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3개의 화구 가운데 하나는 이 당시에 형성된 것이다.
천년분화가 알려진 것은 일본에 있던 상당한 양의 화산재 덕분이었다. 1970년대 역산 결과 꽤 큰 폭발이 있었어야 했다는 추측이 나와 화산학계가 관심을 보였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학자들이 해당 분출을 연구해 왔다.
북서풍이 불던 겨울철에 발생한 분화이기 때문에 천년분화 분출물의 상당량은 동해에 퇴적되었으나 다양한 이슈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계산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여러 추정이 있었는데, 화산재의 양을 넉넉히 잡아 가정하면 화산폭발지수(VEI) 7에 해당한다. 이 정도는 서력기원 후 기준으로도 사례가 3번 밖에 없는 강력한 규모이다. 여러 정황상으로 단번에 모든 분출물을 터뜨린 게 아니라, 1-2년에 걸쳐 수 차례 분화했을 것 같다는 추측도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무척 적은데, 현존하는 기록 중에는 450km나 떨어진 개성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하고, 1,000km 떨어진 일본에서도 화산재 구름을 목격한 기록이 있다.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분출인 이 분출은 과거 연대 측정 값이 약 1000년 내외로 산출되었기에 '천년분화'라고도 불리며, 지속적인 고-분해능 동위원소 측정 및 고생물학계의 탐사로 그 범위가 점차 좁혀져 현재는 946년 분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국과 스위스,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이 2017년 백두산 천지에서 북서쪽으로 24km 떨어진 중국 지역에서 뜨거운 용암에 뒤덮여 죽은 낙엽송의 화석을 발견해 방사선 탄소 동위 원소 측정을 했다. 이후 172번째 나이테가 775년쯤 만들어졌음을 산출한 연구팀은 그 나이테를 기준으로 이 나무에 나이테 몇 줄이 추가로 더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이 낙엽송은 946년 10월에서 12월 사이 화산 쇄설물에 덮여 죽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화산 폭발 시기를 이번처럼 오차 범위 3개월 이내로 정확하게 추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연구팀은 실제로 백두산 화산 폭발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그린란드의 빙하코어(ice core)에서 화산 분출물인 황이 유난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비록 지구 기온 변화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당시 백두산 화산에서 방출된 황이 전 세계로 퍼졌다는 증거였다.
연구팀은 또 한국 역사서인 고려사에서 946년 바로 그 해에 개성 하늘에서 커다란 천둥소리[천고명(天鼓鳴)]가 들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것이 백두산 화산 폭발 소리라고 추정했다. 개성과 백두산은 약 470km 떨어져 있어 대략 서울에서 제주 거리 정도이다. 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이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도 화산 구름으로 뒤덮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두산 화산 폭발이 충분히 개성까지도 영향을 주었으리란 주장이다.
연구팀은 일본 나라 지역의 사찰인 고후쿠지(興福寺)의 기록에서도 증거를 찾아냈다. 고후쿠지의 기록에는 946년 11월 3일 '하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이 바로 백두산의 분화로 화산재가 떨어진 것을 기록한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팀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추정한 것이 기존의 역사 기록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 백두산 분출물이 일본 나라 현까지 도착하는 데는 16시간이면 충분하므로, 정확한 화산 폭발 시간은 946년 11월 2일 저녁 무렵일 확률이 높다.
947년 2월 7일에도 일본 교토에 하늘이 요동치는 소리가 울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일본 내의 자연현상인지 백두산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플리니식 분화 소음이 교토에까지 들릴 정도였다면 필시 한반도에서도 들렸을 테지만 교차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내 다른 현상이라고 추정한다. 만에 하나 백두산에서 난 소리라면 앞서 11월 시작한 분화가 이때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천년분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데에는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것 뿐이 아니라, 시기가 맞물려 발해 멸망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한몫 한다. 일본의 마치다 히로시라는 화산학자는 1992년, 백두산이 폭발해 발해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설을 주장했는데, 요사나 동시대 역사서에 백두산 언급이 없어 분화와 멸망의 인과관계는 인정받지 못했다. 또 바람의 방향에 따라 중국 쪽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을 수도 있음이 밝혀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윤수 박사는 '백두산 대분출은 946년에 일어났지만, 그 전에 소규모 분출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백두산은 1,000년 단위 대분출 주기와 100년 단위 소규모 분출 주기가 함께 도래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발해가 멸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946년은 발해가 멸망한 지 대략 20년이 지난 시기로 발해 멸망과 백두산 폭발과 연관이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발해 멸망 이후 진행된 발해부흥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발해는 926년 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