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9.
엔베르 호자는 여타 다를 것 없는 일반적인 공산주의 국가의 독재자이긴 하나, 비슷한 시기에 독재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철저히 실패한 데 반해 그의 생전에는 나름대로 국가 자체는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즉 알바니아는 당시에도 동유럽 최빈국의 하나였지만, 북한이나 기타 공산국가와는 달리 그의 생전에 국민이 기아로 굶어죽는다거나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또한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1960년대에 너도나도 서방에서 외채를 빌려서 반짝 호경기를 맞았다가 1970년대부터 대서방 외채에 의한 고이자부담에 국민생활이 악화되지만, 호자는 자급자족 경제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외채도 빌리지 않았고 외부경기에 휘둘리지 않았기 때문에 1980년대 동구권과 중남미 외채위기속에서도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았고, 적어도 동구권 붕괴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그나마 건실했던 나라가 알바니아였다. 저개발 상태에 외채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자는 집권 기간 동안 무신론 국가 선포와 극단적인 쇄국으로 대표되는 폭정을 자행하며 개인숭배를 강요했으나, 그에 못지 않는 굵직한 업적도 몇 개 있다.
2016년 기준 호자의 긍정적 평가는 45% 부정적 평가는 42%로 긍정적 평가가 부정적 평가를 3% 정도 앞서는 수준으로 다소 호불호가 있는 편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조금 높기는 하지만, 호자에게 직접 탄압을 받았던 종교적이거나 리버럴한 알바니아인들에게는 물론 불구대천의 원수이므로, 호자에 대한 평가는 알바니아에서는 상당히 민감한 이야기이며, 외국인은 알바니아인 앞에서 호자에 대한 평가는 삼가는게 좋다.
호자가 창당한 알바니아 노동당은 1990년에 사회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마르크스-레닌 주의와 일당독재를 폐기하고 사회민주주의로 노선을 바꾸었다. 1991년에 자유총선도 치러지고 이듬해인 92년 총선에서 우파인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알바니아에 세워졌던 대부분의 동상이 부서지는 수모를 당했지만, 1997년 집권 민주당이 커다란 금융사고를 치는 바람에 다시 정권을 되찾았다. 이후에 2005년 선거에 패해 다시 야당이 되지만 민주당의 부패에 염증을 느낀 알바니아 국민들에 의해 2013년 다시 집권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알바니아 사회당은 다른 동유럽국가의 집권 공산당이 후신 정당들인 독일 좌파당이나 헝가리 사회민주당처럼 달리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지 않고 2022년 현재도 집권당이다. 이런 현상은 호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도 관련이 있다. 일단 알바니아의 풍토병이었던 말라리아를 추방했고, 전국민의 90%가 넘던 문맹도 퇴치되었는데다가, 또한 여성 억압을 금지시켜 여성의 사회진출도 이전보다는 나아지고, 카눈 운운하며 사적제재를 가하는 인간들을 잡아 가둔 면에서는 노년층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집권 알바니아 사회당 대표가 호자를 옹호하기도 했다. 현재 알바니아 사회당은 호자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자가 저지른 인권탄압이나 철권통치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정당은 친서방-친나토-친EU LBGT옹호적 입장으로 여러모로 유럽의 주류 사민주의정당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이런 정강정책에 반대하는 일부 당원들이 알바니아 공산당 및 알바니아 노동당으로 떨어져나갔지만 이들은 동유럽의 다른 공산주의 정당들처럼 군소정당 신세이다.
국제적으로 소수지만 호자의 사상을 따르는 공산주의 단체들도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및 조직의 국제 회의인 단결 및 투쟁이라는 국제기구도 존재한다. 마오주의에 비하면 수적으로는 많이 적은 편이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상당수인 코소보 지역에서 일부 주민들에게 긍정평가를 받기도 한다. 가령 알바니아계 몬테네그로인 출신으로 코소보에 거주했던 유명 문학평론가인 레제프 초시아(Rexhep Qosja)는 엔베르 호자를 제르지 카스트리오티에 비견되는 알바니아인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호평하기도 했다.